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골덴바움 왕조/역사 (문단 편집) === 개혁과 황제 납치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황제 납치 사건)] 국정을 장악한 라인하르트는 '공평한 재판과 공평한 세금 제도'라는 모토에 따라 제국을 뜯어고치는 대개혁을 추진했다. 불공정했던 형법과 민법이 공정하게 개정되었으며 문벌귀족들이 누리던 면세 특권을 폐지했다. 또한 반란을 일으킨 구 대귀족들의 재산을 모조리 압류하여 제국을 괴롭히던 재정적자를 단번에 해결했으며 귀족들이 소유하던 저택들을 평민을 위한 병원과 복지시설로 사용했고 귀족들이 쌓아놓았던 예술품들은 모조리 공공 미술관으로 보내버렸다. 또한 귀족들이 소유한 장원도 모조리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분배하고 농노 역시 해방시켰다. 귀족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던 특수 금융기관이 폐지되고 농민들에게 저금리로 영농자금을 대출해주는 농민금고가 신설되었다. 라인하르트는 행정조직 역시 개혁했다. 과거 왕조의 반역자, 공화주의자를 잡는다는 명분으로 민중을 탄압하고 언론을 검열했던 [[사회질서유지국]]은 일시 폐지되었다가 [[내국안전보장국]]으로 개편되었고, 사상범과 정치범도 급진 공화주의자와 테러리스트를 제외하면 모두 석방되었다.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던 몇몇 신문과 잡지도 재간이 허가되었다. 이 개혁에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은 평민들은 라인하르를 '해방자', '개혁자'라고 칭송하며 그를 전면적으로 지지하고 현실에 분통을 터뜨리는 문벌귀족들을 자발적으로 감시했다. 그러나 이 시기 골덴바움 왕조는 국력 면에서는 이전보다 더 강해졌을지는 몰라도 왕조의 존속 면에서 보자면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문벌귀족과 리히텐라데 후작이 연달아 숙청되며 왕조를 수호할 사람이 사라졌고,[*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아달베르트 폰 파렌하이트]]처럼 왕조에 충성심을 가진 이들은 내전에서 패해 망명길에 오르거나 라인하르트파로 전향했다.] 궁정에는 제위를 찬탈할 기회를 노리는 라인하르트 일파가 가득 차게 되었다. 하지만 라인하르트는 에르빈 요제프 2세를 폐할 명분이 없어서 찬탈을 서두르지는 않았다. 한편 [[페잔 자치령]]은 제국과 동맹의 대립에서 어부지리를 챙긴다는 기존 계획이 [[제국령 침공작전]]의 실패로 무너졌음을 깨닫고 차라리 제국에 붙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한다는 새 계획을 세웠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국이 동맹을 침공할 명분을 제공해야 했고, 자치정부는 페잔으로 망명한 [[문벌귀족(은하영웅전설)|문벌귀족]] 잔당과 접촉하여 [[은하제국 정통정부]] 수립과 황제 납치를 계획했다. 라인하르트도 골칫거리인 황제를 남의 손으로 제거할 수 있었기에 흔쾌히 페잔의 은밀한 제의를 받아들였다. 계획대로 페잔이 파견한 --구출--납치조는 오딘에 주재하는 페잔 판무관 사무소의 도움을 받아 황궁 [[노이에 상수시]]에 잠입하여 [[에르빈 요제프 2세]]를 납치했다. 귀족들은 황제와 함께 동맹에 망명하여 [[욥 트뤼니히트]] 최고평의회 의장의 도움을 받아 [[은하제국 정통정부]]를 설립하고, 동맹과 페잔의 지원을 받아 라인하르트를 타도하려고 했다. 하지만 라인하르트는 어떠한 외교교섭을 거부하고, 전쟁을 선포하여 동맹 정부를 당혹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납치당한 에르빈 요제프 2세를 폐하고 선선제 [[오토프리트 5세]]의 피를 이은[* 원작에서는 '루트비히 3세'의 증손녀라고 나오지만 외전 2권에서 나온 황제 리스트를 보면 오토프리트 5세가 맞다. OVA에서도 오토프리트 5세의 증손녀라고 수정했다.] 페크니츠 자작가의 갓난아기를 새로운 황제로 옹립하니, 그가 은하제국 38대 황제이자 유일한 여제 '''[[카타린 케트헨 1세]]'''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